제자리

문이 냉장고보다 작았다. 현관문 앞에서 바보처럼 멀뚱히 서있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우리 셋은 더 바보처럼 서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해도 문제였다. 동생과 내가 쓰기로 한 방 한 칸 크기만 한 냉장고를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고치고 도망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밖에 서서 집안 눈치만 살피는 몰락한 남편 같은 냉장고를 엄마는 괜스레 몇 번이고 열었다 닫았다했다. 그래도 10년 넘게 함께 살았던 냉장고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새 동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툴툴 거렸던 동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재촉했다. 결국 엄마는 이삿짐을 날라주러 왔던 이모 편에 냉장고를 되돌려 보냈다. 엄마의 두 여동생 중 엄마를 따라 A동네의 집을 샀다가 치솟는 집값으로 신바람이 한창 나 있는 둘째 이모였다. 원래대로였으면 우리는 지금 이모네 옆 동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그 집을 분양받고 거의 1년 동안 엄마는 각종 인테리어 책들을 사 모았다. 일찍 퇴근한 날이면 이른 저녁식사 준비를 마치자마자 소파에 앉아 책들을 펴들었다. 이 책 저 책 열심히 들여다보며 이곳저곳 책 귀퉁이를 접어놓고는 가족들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접어놓은 페이지들을 차례대로 보여주며 서재 조명으로 필립스는 어떤지, 원목 느낌으로 꾸미는 건 어떤지, 커튼색은 뭐가 마음에 드는지, 오픈 키친을 하는 건 어떤지 같은 것을 물어보곤 했다.

그랬던 엄마는 이제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새로운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다섯 걸음이면 끝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이 두 걸음만큼을 차지했다. 엄마는 종종 걸음으로 거실을 계속 왔다갔다 걸었다. 어디다 텔레비전을 놓아야 그나마 딸들의 눈을 덜 해칠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는지를 가늠해 보는게 분명했다. “아우, 정신없어. 그만 왔다 갔다 해! 그래봤자 텔레비전 놓을 데는 저기 밖에 없잖아” 동생이 벽 한 쪽을 가리키며 퉁퉁거렸다. 사실 그랬다. “그래, 그건 그런데...” 그리고 나서도 엄마는 몇 번을 더 왔다갔다 했다. 한 번 왕복 할 때마다 거실이 몇 인치 씩 늘어나기라도 할 듯이. 사실, 걸어다니는 엄마 머릿 속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엄마의 걸음이 조금씩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젼 앞에서의 보폭은 조금 커졌고, 거실을 걸을 때의 보폭은 점점 작아졌다. 처음에는 다섯 걸음이었던 거실이 여섯 걸음 반 정도로 늘어나고, 두 걸음이던 텔레비전이 한 걸음 반 정도로 줄어들었을 즈음, 6.5-1.5=5, 텔레비젼과 맞은편 벽 사이가 다섯 걸음 정도면 조금 안심이라는 듯, 엄마는 겨우 텔레비전의 자리를 정했다. 놓아봤자 거기 뿐인 그 자리로 세 명이 달라붙어 텔레비젼을 옮겼다.

엄마는 텔레비전 반대편 벽에 기대어 앉으며 연신 당부했다. “얘들아, 너희 텔레비전 볼 때 이렇게 벽에 딱 붙어서 봐야 돼? 응? 엄마 좀 잠깐 봐봐. 이렇게. 엉덩이 벽 쪽으로 딱 밀고. 등 이렇게 딱 붙이고. 알았지?“ 엄마는 엉덩이를 있는 대로 쭉 빼고 등을 곧게 핀 채 벽 따라 직각이 되어있었다. 동생은 그쪽을 흘끗 한 번 쳐다보고는 괜히 빈 박스에 붙은 누런 테이프를 좍좍 뜯어내기 시작했다. 벽에 붙어 앉은 채로 엄마는 집안을 훑어봤다. 텔레비전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나도 엄마를 따라 처음으로 집안을 둘러봤다. 사실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거실과 방 한 칸 모두가 그냥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집이었다. “뭐, 세 식구 살기에는 나쁘지 않다?” 말을 맺은 건지 물어보는 건지 모를 억양으로 엄마가 말했다. 나와 동생을 번갈아 보며 피식피식 계속 웃었다. 그치, 라고 대답하는 건지 되물어보는 건지 모를 억양으로 나도 대답했다. 엄마 쪽으로 발을 떼는데 동생이 박스에서 떼어낸 테이프 조각들을 손으로 동그랗게 뭉치며, “아우, 언니도 좀 앉아. 계속 왔다갔다 정신없어 죽겠네!” 소리를 지르고는 팔을 세차게 휘둘렀다. 테이프 뭉치가 누런 눈덩이처럼 휙 날라오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말하는 동생도 대충 벼린 짐 속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올려놓았다 내려놓았다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대충 이쯤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가져온 물건들을 막상 그 자리에 놓아보면 잘못 찍힌 사진처럼 어색했다. 그래서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벽에 찰싹 붙어 앉아 비디오를 봤다. 청소까지 끝내고 할 일이 동 났는데도 누구 하나 선뜻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다가 찾아낸 일이었다. 전에도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는 날 중 하루를 골라 종종 이렇게 비디오를 보곤 했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있으려니 잠시나마 예전 집에 있는 것 같았다. 엄마도 편안해보였다. 동생은 등에 벽이 자꾸 배겨 아프다고 칭얼거리면서도 그날 처음으로 웃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앉았다.

당분간은 숨어 있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 친구 말에 엄마는 회사에 가지 않고 우리는 학교에 가지 않은지 어느덧 열흘이 넘어갔다. 가끔 답답하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슈퍼까지는 다녀올 수 있었다. 거기서 동생과 초가을에 성급하게 나온 호떡을 사서 한 입씩 번갈아 먹으며 돌아오곤 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운동화 끈처럼 좁고 긴 골목을 걸어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 시절 우리가 걷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길과 집 안이 전부였다. 나는 고등학교에, 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한 첫 해의 가을이었고, 우리는 여름동안 돌아올 2학기를 열심히 준비했기에, 철판에 갓 놓인 호떡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는 마음으로 가을을 맞았는데, 돌아온 것은 호떡 누르개로 가차 없이 꾹 눌린 잔뜩 납작해진 세상이었다. 그래도 이제 동생과 좁은 방 안에서 부딪히며 자는 것에 익숙해졌고 방 벽을 타고 새어드는 옆집 사람들의 말소리에 새벽잠을 설치지도 않았다. 숨어있어야 하는 우리에게 지하의 우리 집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다가 황급히 일어서는데 두 발이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방 안이었는데, 내 책상 아래였는데, 그런데, 그곳에서 두 발이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물이 있었다. 발목을 휘감는 높이의 물이. 깜짝 놀라서 첨벙첨벙 물을 헤치며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실이 바닥에서부터 한 뼘 반 정도 만큼 물속에 잠겨 있었다. 매일같이 현관문에 붙어있어 떼어가지고 들어와 모아놓았던 전단지들, 의자 다리 사이 어딘가 떨어져 있었을 가느다란 고무줄 머리끈, 어디서 풀려 나온 건지 알길 없는 실가닥들이 둥둥 떠다녔고 그것들을 가만히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잠이 든 사이에 폭우로 바뀐 비가 창문이며 창문 바로 옆 길바닥을 무섭게 때리는 소리가 집 안을 가득 메웠다. 상황이 파악되자마자 컴퓨터로 달려가서 본체를 번쩍 들며 동생에게 소리쳤다. "양동이랑 대야랑 빨리 가지고 와!" “양동이가 어딨어, 우리집에!” “우산 꽂아 놓은 통이라도 가져오라고!” 황망하게 서 있던 엄마도 얼결에 내게로 다가와 컴퓨터를 맞잡아 책상 위로 같이 옮겼다. 황급히 다른 것들도 물에서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책상위로 부지런히 물건을 나르던 엄마가 문득 손을 멈추더니 책장으로 달려갔다. 책장 맨 아래 칸은 완전히 물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엄마는 물밑으로 손을 넣어 책들을 조심조심 꺼내 높은 곳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엄마, 책보다 저기 비디오 데크랑 전화기부터 좀!” 엄마는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양동이를 찾아 들고 나타난 동생이 물 위에 양동이를 아무렇게나 던져 띄워두고 비디오 데크와 전화기에 연결된 선들을 미친 듯이 뽑아 위로 올렸다.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자꾸만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들어 매고 대야로 물을 퍼서 양동이에 담기 시작했다. 어느새 엄마도 책장에서 떨어져 나와 물을 퍼 담았다. 양동이가 안팎으로 왔다갔다 수 십 번쯤 하며 빗물이 차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았을 때 빗소리도 잦아들었다.

길고 긴 밤이 지나고 비가 그치고 아침이 오고 더 이상 퍼 담을 물이 없어졌다. 거실은 물 따라 흘러내려온 것들과 물 피해서 높은 곳으로 옮겨진 것들로 뒤죽박죽이었다. 엄마는 바닥에 남은 흙 찌꺼기들, 자잘한 쓰레기들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그 옆에 마주 앉아 드라이기를 들고 볼펜 글씨들이 번져 알록달록 물든 교과서들을 말렸다. 종이가 울어서 책들이 두 배 가까이 되었다. 청소를 마무리 지은 엄마도 젖은 책 한 무더기를 가져와 드라이기를 집어 들고 말리기 시작했다. 책장 맨 아래 칸에 꽂혀 빗물에 완전히 먹혀버렸던, 군데군데 귀퉁이가 접힌 인테리어 책들이었다. 책 표지 속 거실에는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햇빛이 올리브색 차양에 쪼개어져 연겨자색 소파 위에 조각조각 떨어지고 있는 그 거실 안으로 들어가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청소라도 하듯, 엄마는 그 거실을 드라이기로 정성껏 꼼꼼하게 말렸다. 말려야 할 책들이 열 권이 넘었다. 엄마는 한 번 말린 책은 바닥에 펼쳐두고 바삐 다음 책으로 넘어갔다. 하루종일 분주하게 정리하고 나니 저녁 즈음에는 밤새 흐트러진 것들이 대충 제자리를 찾았다. 해야할 일들은 아직 많아 보였지만, 집안 여기저기 앙금처럼 배어있는 물기가 마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할 말도 없었다. 동생마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따금씩 윙윙 드라이기 소리만이 축축한 공기 사이에 떠다녔다.

“우리 비디오 볼까?” 문득 엄마가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피곤한데, 그렇다고 바로 잘 수 있을 것 같진 않지?” 엄마가 고개를 돌려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그때까지도 나와 동생은 거실 바닥에 미적미적 앉아 하릴없이 서로의 교과서만 휘리릭 넘기고 있었다. 젖은 이불과 옷가지들을 빨랫대에 걸면서 웃음을 얼굴에 거는 데에도 성공한 엄마는 계속 웃으면서 그날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오늘 우리 너무 고생했으니까. 엄마가 오랜만에 팝콘도 튀길게. 영화 보다가 졸리면 그냥 누워서 자면 좋지 뭐. 아, 혹시 나중에 배고플까? 그럼 오늘은 피자 사다가 먹어도 좋고 또...“ 엄마는 계속 웃었고 계속 말했다. 콘센트에서 드라이기 선을 뽑아 동그랗게 말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어깨 너머로 열 몇 권의 책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게 보였다. 영화 세트장 같이 예쁜 방들이 우글우글해진 종이결 따라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마는 진짜로 프라이팬에 팝콘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런 하루의 끝에서 팝콘이 하얀 꽃처럼 발랄하게 움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책상 아래 발을 디뎠을 때 물이 휘감기는 것 만큼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퍼져 나오는 팝콘 냄새가 축축하면서 퍽퍽하기만 했던 집안 공기에 기름기 같은 것을 돌게 해주었다. 우리는 팝콘을 쟁반에 담아 들고 벽에 찰싹 붙어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화면 위로 펼쳐지는 영화 위로 간밤의 일이 더 영화같이 지나갔다. 동생도 어쩐지 멍해 보였다.

“어우, 쟤넨 어쩜 저렇게 눈이 예쁘니. 진짜 인형 같다." 화면에 귀여운 서양 꼬마 여자애 얼굴이 크게 잡혔다. 서양 꼬마들만 보면 늘 나오는 엄마의 감탄이 어김없이 튀어나왔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그 귀여운 꼬마와 꼬마의 친구들이 화면 속에서 팟 사라졌다. 불길한 소리가 꿀렁대더니 데크가 비디오테이프를 토해냈다. 왜 저러지... 팝콘 몇 개를 아작아작 씹으며 엄마가 데크 앞으로 갔다. 우리도 뒤따랐다. 엄마가 데크 입에 아직 물려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조심히 집어 들었다. 검고 긴 꼬리가 그 뒤에 매달려 같이 쭉 빠져 나왔다. 엄마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어? 테이프 끊어졌어?"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엄마나 나보다 더 잘 아는 동생이 데크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데크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다른 테이프를 넣어도 이렇게 필름이 씹힐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 이거 못 보는 거야......?" 응, 안 되겠네, 라고 동생이 심상하게 대답하는 순간 엄마 손에서 비디오테이프가 떨어졌다. 엄마의 얼굴이 굳은 채로 살짝 떨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파란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을 받아 엄마의 얼굴은 더욱 서슬 푸르게 보였다. 테이프가 바닥에 탁 떨어지며 거실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한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 발치에는, 데크가 씹다 뱉어 버린 껌처럼 여기저기 이빨 자국들이 나있는 비디오테이프의 필름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화면의 파란 불빛이 그 위로 빗물처럼 차올라 있었다.

한참 바닥을 노려보던 엄마가 그것을 집어 벽으로 있는 힘껏 던졌다. 벽으로 날아간 비디오테이프가 벽을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엄마가 내던진 비디오 데크도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엄마, 왜 그래......” 엄마는 놀라는 동생을 흘낏 쳐다보다가 동생이 쥐고 있는 리모콘을 뺏어 들었다. 떨어진 데크 앞에 주저앉은 엄마가 리모콘으로 데크를 마구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리모콘이 데크에 맞을 때마다 데크의 몸체에 검은 상처가 마구 났다. “이것도 그래, 이것도! 이 데크도 내가 이왕 사는 거 비싸도 좋은 거 사자고, 비싸도 좋은 거 사자고 사자고 사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니네 아빠가 이게 싸면서도 괜찮은 거라고, 그렇다고 고집 부려서 샀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렇게 돈 아끼는 척은 혼자 다하더니. 혼자 다하더니!” 데크를 내리치던 리모콘이 부러지며 플라스틱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우, 시끄러워, 그만해!” 부러진 리모콘 조각을 주워 다시 던지려고 팔을 치켜드는 엄마의 어깨를 동생이 꽉 잡았다. “이게 왜 아빠 때문이야? 엄마가 어젯밤에 책들 옮긴답시고 데크는 그냥 물속에 놔뒀잖아! 그러게 쓸데없는 책들에 왜 그러고 있냐고!“ “됐어, 너도 그만해! 엄마, 엄마도 그만해. 이러다 다치겠어. 다들 그만해” 그제야 엄마와 동생 사이에 끼어 그만하라고만 계속 말하는 나를 엄마가 밀쳤다. “너도 똑같애. 너 이사오고 나서 빈말로라도 엄마 괜찮냐고 물어나 본 적 있어? 지긋지긋하고 독한 은씨들. 정말 지긋지긋해!“ 엄마의 고함과 함께 팝콘이 담겨있던 쟁반도 벽으로 날아갔다. 더 이상 던질게 없어지자 엄마는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엄마가 울었다. 동생도 울었다. 이미 식어버린 팝콘이 바닥에 흩어지며 내는 고소한 버터 냄새가, 억지로 잡으려고 기를 쓰다가 놓쳐버린 그날 저녁의 조그만 평온의 잔해들이 코를 찔렀다. 궁금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평온이란, 괜찮아?라는 말로 확인하려 드는 순간 깜짝 놀라 도망가버리는 겁많은 길위의 고양이 같아서, 좁아진 방에 맞춰 몸을 웅크리고 얇아진 벽에 맞춰 목소리를 죽인 채 그저 알아서 우리에게 걸어 오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고양이가 달아나 버린 자리에 우리 셋이 남았다. 우리는 처음으로 그렇게 거실에 앉아 같이 울었다.
그날 밤 또 한 차례 폭우가 내렸다. 거실은 또 한 번 잠겼다. 양동이가 몇 번씩 안팎을 오갔다. 나는 푹 젖은 인테리어 책들을 내다 버렸고 그것 때문에 엄마와 싸웠다. 싸우는 동안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이후 갑자기 겨울이 왔다. 한동안 비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바닥에서 한 뼘 반 높이 아래에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후로 우리는 걸핏하면 싸웠고 걸핏하면 울었지만 이따금 새로 산 데크 앞에 앉아 비디오를 보았다. 그리고 이따금 괜찮아?라고 서로 묻고 답했다. 우리는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고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저마다 새롭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바닥에서 한 뼘 반 만큼을 빼놓고 찾아 낸 제자리였기에 그것은 두려운 일이였다.   


탑승은 언제든지-

새벽 5시 30분경, 태하다11의 품 안에서 몰래 눈물을 10초 정도 흘린 이유에 대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것은 작년 이맘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숨겨져 있던 그 문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작년 이맘때였으니, 그 문제가 몸 안 어딘가에서 조용하고 은근하게 탄생하던 순간을 시작으로 치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 ..라고 쓰는 순간, 그렇다면 그 문제가 탄생하기까지 원인이 되었던 과거, 한때는 "살아온 날들"이라는 이름- 한 인간이 수년 간 겪었을 각양각색의 경험들과 감정들이 한데 어우러져 뛰어놀고 있을 것 같은 생기있고 입체감 있는 이름-으로 불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저 '병의 원인'으로 소급되어 버린 과거에서 시작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잦은 출장과 때로는 밤낮 없는 업무들이 요구되는 업계에 첫 발을 들여놓았던 2009년의 어느 날일 수도 있고, 그런 업계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주제를 가지고 석사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던 2008년의 어느 날일 수도 있고, 몸과 마음에 잔뜩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술집 한 구석으로 가져 가서 연거푸 마시는 술과 연거푸 피워대는 담배 연기 속에 살살 녹여 날리는 쾌감을 알아버린 20대 초반의 어느 날일 수도 있으며, 그렇게 매 순간을 하얗게 태우며 뜨겁게 불사르는 것이 제대로 젊은 시절을 보내는 거라는 잘못된 로망을 가졌던 10대의 어느 날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병력이 새겨진 유전자를 가진 조상 중 한 사람이 우리 집안으로 들어왔던 그 순간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중 하나, 혹은 그 모든 것의 결과로 나는 지금은 다 나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얼마든지 무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병을 얻었고, 병에 대한 공포를 얻었다. 내가 건강 문제로 거꾸러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이다. 그 문을 활짝 열자마자 오랫동안 문너머에 쌓여있던 온갖 음습한 것들이 눈 앞으로 튀어 나왔다. 그 서늘한 모습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요 며칠 다시 불면증이 찾아왔다. 수면 리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벽 3시 쯤에 맞춰져 있던 수면경계선이 조금씩 뒤로 밀리더니 오전 10시쯤에서 겨우 멈췄다. 낮 1시까지 밀고 내려온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라는 부사를 여기에 쓴다는 것에 한숨이 나온다- 하루 이틀만에 다시 오전으로는 넘어왔다. 사실 불면증은, 2010년에 거칠고 우악스럽게 내 인생에 뛰어든 이후부터 상황에 따라 절기에 따라 강약만 달랐지 항상 따라다닌 것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혹은 가벼운 척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맞춰 나는 나만의 시간대를 찾아서 매일매일 살면 되는 거지 뭐', 라는 마음으로 깨어진 수면 리듬이 생활 리듬과 감정선까지 깨버리지 않도록 신경써서 생활과 마음을 정돈하면서 지내오고 있었다. 그것에 약이 올랐는지 불면증이 요 며칠 갑자기 맹공을 퍼부었다. 결국 생활 리듬이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그 허물어진 틈으로 마음이 쏜살같이 빠져나가고, 오직 야금야금 자라서 덩치가 커진 병에 대한 공포만이 틈 사이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덩그라니 남았다. 이렇게 잠을 못자면, 이렇게 계속 생활하다보면 나는 아플거야. 그놈은 작년 이맘때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올거고, 한 번은 비교적 매끄럽게 넘겼지만 두번씩이나 그런 행운을 누리지는 못할거야, 이미 써버렸으니까. 같은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서 일렁대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동이 트기 전에 자보려고 수면 유도제를 두 알 먹고 태하다11이 해주는 발마사지를 받고 가만히 잠이 올 때를 기다리다가 새벽 5시에 자리에 누웠다. 태하다11이 불을 끄고 내 옆에 누워 나를 꼭 안았다. 요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푹 빠져 있는 나는 태하다11, 일단 자리에 누우면 언제든지 금세 잠이 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태하다11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장난스레 속삭였다. "오늘도 나만 남겨두고 곧 떠나겠네" 태하다11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야, 오늘은 너도 데려갈거야."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난데없는 우주선 놀이가 시작됐다. 나를 안은 상태에서 태하다11이 한쪽 손바닥으로 내 등을 위에서 아래로 "지잉-"하고 훑어 내렸다. "탑승준비 완료". 손가락으로 내 오른쪽 어깨죽지 아래를 꾹 눌렀다. "삐이- 근육 이완 장치 가동." 손가락으로 등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피흉~ 수면 뇌파 작동." 왼쪽 견갑골 아래를 꾹 눌렀다. "삐빅~ 잡념 제거 장치 작동. 자, 이제 슈우우우욱 날기 시작했고 이제 곧 나랑 같이 도착할거야." 곧이어 "지이이이잉"하는 나지막한, 졸음이 조금 내려 앉은 우주선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태하다11의 손이 내 등을 천천히 계속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자장자장자장의 우주놀이 버전같은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소리를 들으며, 다정하게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을 느끼며, 태하다11의 품에 한참을 안겨 있었다. 곧 도착한다는 수면의 행성은 한참이 지나도 보일 기미조차 없었지만, 그곳까지 가는 우주선 안은 따뜻했고 부드러웠고 좋은 냄새가 났다. 10초 정도 눈물을 흘린 것은 바로 이때였다. 졸음의 중력으로 지이이이잉 엔진 소리는 점점 느려졌고, 잦아들어갈 때 즈음이었다. 갑자기 흘러내린 눈물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요 근래 이 비슷한 기분으로 운 적이 이미 서너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낯간지러운 선언을 하나 해야한다.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너무너무 행복하다. 작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상반기내내 병원을 왔다갔다하며 병과 병의 잔재들과 싸웠음에도, 내 생애 최고의 해로 늘 꼽혀왔던 2001년이 2013년에 12년만에 자리를 내어주기 무섭게 다시 그 자리를 탈환한, 그런 해였다. 나는 '행복'이라는 말에 엄격한 사람이었다- 내가 앞 문장에서 턱하니 행복하다는 말을 써버렸기 때문에 염치가 없어서;; 과거형으로 쓰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여전히 엄격한 사람이다.- 행복이라는 말은 정의도 모호하고 의도도 의심스럽고 삶에서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의 미세한 결들을 거칠게 뭉뚱그려 버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요 몇 개월동안에 내가 느끼는 흘러 넘치는 이런 기분을 '행복'이라는 말을 빌지 않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요즘의 내 감정을 그나마 세밀하게 분류해서 말해보자면, 작년에 나는 '계속 정말' 행복했고, 요즘은 '정말정말너무' 행복하며, 가끔씩 슬픈 일이나 걱정스러운 일이 끼어들면 '그래도 여전히 정말너무' 행복했다가 조금전처럼 우주선에 탑승해서 지이이이이잉 소리를 듣는 순간,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도 놓치기 싫은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게 되는 그런 순간 같은 때에는 '겁이 날 정도로'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겁이 날 정도로 행복할 때마다 울고 싶어졌고 때로는 진짜 울었고 오늘처럼 울다 말기도 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겁이 날 정도로'가 그냥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아니 이미 경험한 것에서 더 악화된 버전으로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구비되어 있는 실체가 있는 진짜 '겁'이라는 점이다.

병에 대한 공포. 재발할까봐. 더 심하게 재발할까봐. 그래서 이 행복들이 사라질까봐. 올해 초 병원에 있을 때 나를 가장 울렸던 말은, "시봉아~ 어서 나아서 나랑 다시 놀자~" 라고 태하다11이 한 말이었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다시'를 발음하는 순간 문장 전체에 번지는 물기마저 어쩌지는 못했다. 그 말을, 그 목소리를 떠올리때마다 어쩐지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매일 붙어다니며 낄낄거리고 장난치고 놀곤 했는데 몹쓸 병에 걸려 집 밖으로 더이상 나오지 못하는 단짝 친구네 집 앞을 시무룩하게 서성이다가 그 집 문에 대고 대뜸 "oo야~ 빨리 나아서 나랑 다시 놀자아~"고 외치고는 쓸쓸하게 혼자 돌아서는 꼬마 아이의 뒷모습 같은 것이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났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진짜 이 밖으로 다시는 못 나갈까봐, 그래서 저 꼬맹이하고 다시 신나게 붙어다니며 놀지 못할까봐 그렇게 조바심이 났었다. 이제 다시 예전처럼 신나게 놀 수 있게 됐고 심지어 이제는 그 꼬맹이하고 가족까지 됐는데 다시 아파서, 그리고 이번에 아프면 진짜로 더 이상 같이 못 놀까봐, 병원에 누운채로 이 시간들을 그리워만 할까봐.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지이이이이잉 하는 졸린 태하다11의 목소리를 들으며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을 느끼며 품에 폭 안겨 있는 지금 이 시간을 반드시 떠올리며 울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확 쏟아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지도 않았고 와서도 안 되는 미래의 어느 날을 연민하며 괜히 눈물을 흘린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못났다....

운 시간은 10초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이미 훨씬 전부터 마음 속에서 울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은 쉴새없이 빠르게 흘러 베개 한 쪽 끝에 동그란 얼룩을 만들었고, 조금씩 뒤척일 때마다 내 볼에 차갑게 닿곤 하던 그 얼룩의 물기가 다 말라서 없어지고도 남는 긴 시간동안 이제는 엔진소리가 완전히 꺼진 우주선을 타고 우주 어딘가를 방황했지만 결국 수면의 행성에 착륙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우주선에서 빠져나와 포기하는 마음으로 거실로 나왔을 때는 이미 창밖이 훤히 밝아 있었다. 우유를 조금 데워가지고 책상 앞에 앉고 보니 그새 우주선은 드르렁드르렁 퓨퓨퓨퓨 바람 빠진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뭐야 우주선이 완전 고물이야! ㅎㅎ

하지만 정말 고물인 것은 불면증을 고치려고 찾아갔던 정신과와 수면클리닉들이었다. 결국 약물 치료였는데 나같은 경우는 수면제를 받아올 수 있었다는 점 빼고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속을 거 뻔히 알면서도 혹시 싶어 얼마전에 모 대학병원에도 갔는데 올해의 가장 아까운 지출로 그날의 진료비를 꼽고 싶다. 사실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된다. 낮밤이 자꾸 바뀌어서, 혹은 언제 잘지 예측이 불가능해서 문제지 어쨌든 졸음이 쏟아지는 순간에 자리에 누우면 바로 깊이 잠이 들어서 5시간 이상은 자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피곤할 때는 3시간만에 깨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15시간을 자기도 한다. 그냥 잠 못자는 것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면 차라리 이란 식이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그냥 졸릴 때 잠을 자는 것이 건강에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사회생활이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래서 올해 나의 다짐은, "내가 수면 사이클이 무너져있는 시기에는, 내가 하고 있는 생업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꼭 참석해야 하는 가족 행사나 주변인들의 경조사가 아니라면, 나의 이런 사정을 이해하고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관계가 아니라면 약속 자체를 아예 잡지 않는다. 거절 못하는 내 성격에 만나자고 하는 걸 두 번 이상 거절하는건 굉장히 큰 일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건강이므로 올해만큼은 꼭 그렇게 하자" 1월에는 이미 약속이 벌써 14개가 잡혀있기 때문에 망했고;;; 2월부터는 꼭 수면 시간을 안전하게 확보해야겠다.

그리고 두번째 다짐. "절대 자기 전에 자리에 누워서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말 것." 머릿속으로 '자야지'라는 낱말을 떠올리는 순간, 그 말이 시공간 연속체의 조직을 찢어 웜홀을 하나 열어 제치고 그 구멍을 타고 무한대의 공간을 넘어 우주로 전해지기라도 하는 듯, 내 모든 것이 수면의 행성에서 몇 광년 뒤로 밀려나버린다. 자든지 말든지~라는 마음으로 새침을 떨며 자리에 누워야 한다. (핫하고 저돌적인 내 친구들은 저런식의 새침을 '눈앞의 남자랑 자고 싶어서' 떤다는데, 나는 평생 그런건 안 해보고 그냥 '자고 싶어서' 떨어야 한다니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무튼 우주선의 기틋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탑승에는 실패했지만, 탑승이야 언제든지 하면 되니까. 지금의 이 행복한 시간들을 잃지 않기 위해 올 한해 건강을 잃지 말자!는 것은 너무나 바람직한 목표인데, '건강해야지'도 너무 많이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면 건강에서 점점 더 밀려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올 한해는 철저히 내 몸 중심적으........까지 쓰고 있는데 고물 우주선이 일어났다. 아 벌써 아침 9시 반이 넘었어? 혼자 서재에 와서 책을 읽고 캐나다에 있는 친구와 새해 인사를 하고 블로그에 글 끄적이고 있는 동안 태하다11의 밤도 지나갔다. 평소 같으면 몇 시간 더 자고 일어났을텐데- 사실 잠 많은 태하다11이 다시 잘 줄 알았지 진짜 일어날 줄은 몰랐다- 오늘은 잠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터벅터벅 부엌에 나와서 "새해 아침이니까 우리 시봉이 떡국 끓여줄게~"라며 떡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집안에 새해 아침의 냄새가 가득 찼다. 잠이 엉키는 바람에 시간까지 엉겨 지금이 작년의 끝인지 올해의 시작인지 불분명한 느낌으로 앉아있던 나의 새해는 비로소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주선이 수면의 행성에는 나를 데려가주지 못했지만 2015년에는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수면의 행성이야 뭐, 떡국 먹고 나서 가면 되지 뭐. 탑승이야 언제든지 하면 되니까.

자, 2015년이 시작되었으니까 이제 떡국 먹으러 나가야지. 다만 아까 슬쩍 보니까 만두도 넣는 것 같던데 너무 맛있어서 과식으로 힘들게 한해를 시작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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